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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83
제목 봉쇄수녀원, 고독이 행복의 자양분 되는 곳
작성자 hiajinta
작성일자 2020-02-05
조회수 37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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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쇄수녀원, 고독이 행복의 자양분 되는 곳

[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 (7)노체라 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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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인근의 작은 도시 노체라. 그곳에 가는 날은 어릴 적 소풍 갈 때처럼 가슴이 뛰고 설렙니다. 오늘도 수녀님들이 반가운 얼굴로 우리 일행을 맞아 주시겠지?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나? 오늘 점심에는 어떤 메뉴가 나올까? 생각만 해도 즐겁기 때문입니다.



500여 년 역사의 클라라 수녀원

노체라에 가면 역사가 500년이 넘는 클라라 봉쇄수녀원이 있습니다. 한국 수녀님 2명이 수도생활을 하고 있어서 가끔 면회 갑니다. 봉쇄수녀원은 말 그대로 바깥세상으로부터 철저히 ‘봉쇄’되어 있습니다. 어떤 누구도 수녀원장의 허락 없이는 봉쇄구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면회 온 사람들은 예외 없이 봉쇄구역 밖의 식당에서 식사해야 하고, 면회는 별도의 면회실에서만 가능합니다. 창살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면회실의 구조는 교도소의 그것과 영락없이 똑같습니다. 창살 사이로 손을 넣어 악수할 수 있고, 면회시간이 좀 여유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말입니다.

바깥사람들로서는 궁금한 게 한둘이 아니겠지요. 제가 관심을 두고 있는 화두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행복이고, 다른 하나는 고독입니다. 행복은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최고 가치이고, 고독은 인간 실존의 원천입니다.

“당신들은 정말 행복합니까?” “당신들에게 고독은 무엇입니까?”

수도자들에게 직설적으로 물어볼 수야 없지요. 대신 이 화두를 마음속에 간직한 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대화의 지향점으로 삼습니다. 갑자기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 를로르의 여행 시리즈에 나오는 꼬마 주인공 ‘꾸뻬’가 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세상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내용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능청스럽게 물어보곤 합니다.

한 번은 이런 말을 툭 던져봤습니다. “수녀님, 바깥세상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만나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

수녀님이 잠시 빙긋 웃으시면서, 뭘 그런 걸 물어보느냐는 듯이 하신 대답이 저의 뇌리에 꽉 박혀 있습니다. “대사님, 이곳이 가장 아름다운데, 덜 아름다운 곳에 왜 가고 싶겠습니까?”

지난 가을이었습니다. 수녀님들은 그날따라 명랑 소녀처럼 방실방실 웃으면서 면회실에 오셨습니다.

“요새 좋은 일 있으세요? 지난번 만날 때보다 더 행복해 보입니다.”

“네, 한국 부채춤을 공동체 수녀님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어요. 다들 재미있어합니다. 저도 즐거워요.”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매일매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요. 기도하고, 일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수녀님 한 분이 ‘불가피한’ 일로 로마에 온 적이 있었습니다. 귀한 손님을 대사관 관저에 모셨습니다.

“오랜만에 나오셨으니 많이 돌아다녀 보세요.”

“아닙니다. 저는 지금 하느님과의 약속을 위반하고 있습니다. 수녀원에 있으면 더 행복합니다. 하느님 맛을 매일 볼 수 있거든요. 세상맛 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무엇이 수녀님을 그렇게 행복하게 합니까?” “나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봉쇄수녀원은 신비의 공동체! 행복은 신비 속에 감춰져 있나 봅니다. 노체라에 갈 때마다 인간 실존의 근원에 깔린 고독(solitude)과 외로움(loneliness)의 실체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독일의 철학자 틸리히는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을, 외로움은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는 말이다. 고독이 내가 선택할 때 존재하는 것이라면, 외로움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현대인은 고독을 잃었기에 외로움에 몸부림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절대 외롭지 않아

틸리히의 구분에 따르면 봉쇄수녀원의 수도자들은 무척 고독하게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 외롭지 않습니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 보리수 아래의 부처님은 어떠했을까요? 고독은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상황이지만, 외로움은 ‘관계 밖으로’ 버려진 상황입니다. 누구와의 관계? 일차적으로는 세상 공동체와의 관계이고, 궁극적으로는 하느님과의 관계입니다.

고독이 행복을 키워주는 자양분이라는 사실을 봉쇄수녀원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의 위대한 발견과 발명, 그리고 불후의 예술작품 대부분이 이러한 고독 속에서 잉태되었다는 사실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노체라에서 돌아올 때면, 승용차 트렁크는 오렌지와 레몬 등 각종 과일로 가득 채워집니다. 봉쇄수녀원의 고독을 먹고 자란 ‘거룩한 열매’입니다.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